• 분류 전체보기
        • Music
        • Book
        • Web
          • Design
          • Developmen..
          • WordPress
        • My fav
        • Daily
          • Travel
          • Writing
          • Cook
          • Pets
    은둔의 즐거움 / 신기율 Book / 2022. 12. 13. 18:09

    은둔은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때로는 불행을 건너는 다리가 되기도 하고, 삶의 역할을 바꿔주는 신비한 터널이나 나를 충전하고 위로해주는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이때 느끼는 ‘혼자’라는 감정은 내가 점점 고립되어가는 외로움이 아니라, 삶의 좀 더 깊은 본질을 경험하게 하는 더 ‘좋은 고독’에 다가가게 한다. 좋은 고독은 내 삶의 면역을 키우는 가장 훌륭한 치료제이기도 하다.

     

    더는 갈 곳이 없다고 느껴질 때

    막장은 광부가 파 내려간 갱도의 맨 끝을 말한다. 탄광의 가장 깊은 곳이기에 가장 위험한 곳이기도 하다.

    이런 위태로운 곳에서 광부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다.

    앞으로 더 나아갈 것인지 아니면 멈출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만약 멈추기를 결정했다면 곡괭이를 내려놓고 내가 파놓은 길을 따라 지상으로 되돌아가면 된다.

    하지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다시 곡괭이를 들고 단단한 벽을 파내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막장에는 '더는 갈 곳이 없다'라는 숨 막히는 절망과 '이제 그만 멈춘다'라는 포기, 그리고 '갱도를 개척한다'라는 희망이 공존한다.

    탄광의 갱도는 여러 사람이 함께 가야 하는 공동의 길이다. 하지만 탄광을 삶에 비유하면, 삶이라는 갱도는 오직 나 혼자만이 가야 하는 고독한 길이 된다. 그 외로운 길에서 내가 들 수 있는 곡괭이는 ‘지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재는 다양한 곡괭이가 모여 있는 창고이기도 하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다양한 지식을 쌓는다는 건, 그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삶의 막장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너무 앞만 보고 달리다 넘어질 때

    고대 사람들은 변화무쌍한 달을 관찰하며 달과 사람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달이 변할 때마다 사람의 마음도 함께 변한다고 믿었다. 풍성한 보름달이 뜨면 마음도 풍성해지고, 이제 막 태어난 새싹 같은 초승달이 뜨면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여리고 새침해진다고. 특히 삭이 되어 달이 어둠 속으로 사라질 때가 되면 마음도 함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어둠이라고 해서 삭을 부정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시간을 사라져가는 달이 새로운 달로 환생하기 위한 '준비의 시간'으로 여겼다. 그래서 삭의 시간이 되면 우리 마음도 그동안 쌓여왔던 아픔과 슬픔을 어둠 속에 비워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삭의 순간이 없다면 달은 이전의 상처와 아픔을 비우지 못한 채 불멸의 고통 속에 괴로워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달과 마찬가지로 사람들도 삭의 시간을 가지며 때 묻은 마음, 질투 어린 미움, 한때의 잘못으로 인한 부채감 같은 부정적인 마음을 비워내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밤하늘처럼 어두운 사회 속에서 매번 가면을 쓰며 다른 모습을 보여야 하는 당신의 마음 역시 지치고 힘들 때면 잠시 스스로를 사라지게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그런 환생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때 지치지 않고 나만의 밝은 빛을 낼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비워낼 수 있는 사라짐의 순간이 있기에 달은 큰 혼돈 없이 한 달을 밝고 따듯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상실의 감정 끝에 매달려 있을 때

    나는 전갈의 탈피를 떠올리며 사람의 마음도 전갈처럼 뼈가 없는 단단한 껍질로 둘러싸여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한다.

    뼈가 없기에 모든 걸 포용하듯 부드럽게 휘어지다가 어느 순간 튼튼한 갑옷으로 자신을 보호하며 바늘 하나 들어올 수 없는 단단한 바위처럼 돌변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렇다면 마음도 전갈의 탈피처럼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좀 더 나답게 살기 위해서는 아픔을 견뎌내는 고독한 인내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마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마음의 탈피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지켜주던 익숙한 껍질과 이별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별을 상실이 아닌 성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만약 내가 지금 견디기 힘든 아픔을 겪고 있다면, 또는 제법 괜찮았던 일상이 어느 순간부터 견딜 수 없이 불편하고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이제는 껍질을 벗고 새로운 껍질을 만들어야 할 때가 온 것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그 순간이 오면 일상에 길들여진 마음을 내려놓고 새로운 마음의 껍질이 돋아나기를 기다려야 한다.

    비록 그 과정이 아프고 고독할지라도 마음의 탈피가 끝나면 이전보다 훨씬 커진 마음으로 더 큰 세상을 담으며 아픔을 이겨내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인생의 겨울을 지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자발적 고립은 마약처럼 묘한 중독성이 있다. 그래서 한두 번의 달콤한 고립 경험이 단 몇 번만으로 끝나는 경우는 없다.

    몸이 늘어지는 무기력한 순간이 자유롭고 편안한 기분으로 인식되는 순간 내 몸과 마음은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고립의 안락함을 끊임없이 원하게 된다. 그렇게 반복된 고립은 결국 나를 위축시키고 주위와의 관계를 단절시키며 더한 고립으로 나를 내몰아간다.

    은둔과 고립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은둔과 고립의 확실한 차이는 다음 날 느끼는 불안함에 있다. 은둔을 하고 난 다음 회사에 출근할 때는 그래도 다시 해볼 만하다는 긍정적인 의욕이 생긴다. 머리는 명료해지고 마음은 따뜻해지며 몸은 가벼워진다. 충분한 충전을 통해 몸과 마음의 탄력성이 회복된 것이다.

    하지만 어제의 휴식이 나를 고립시킨 것이었다면 회사에 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괴롭고 불안해진다. 머리는 무겁고 마음은 어두워지며 몸은 물에 젖은 듯 찌뿌둥하다. 고립이 마음의 면역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언제나 무기력한 고립에 이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짧은 휴식에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고 그것을 통해 어떤 상태에 이르게 될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명확한 목적과 이유가 있을 때 휴식은 나를 위한 은둔의 시간이 될 수 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생업의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 끝까지 놓지 않고 이어갈 수 있는 나를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그 시간은 간절한 기도로 새벽을 열며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완독하는 배움이 될 수도 있고, 주말이면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으로 향하는 고단한 성장의 발걸음이 될 수도 있다.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더라도 봄이 오면 꽃피울 수 있는 씨앗을 가슴에 꼭 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겪은 삶의 위기가 위대한 기회로 바뀌는 마법 같은 필연의 봄이 분명 나를 찾아올 것이다.

     

    저작자표시 비영리 변경금지 (새창열림)

    'Book'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람을 얻는 지혜 / 발타자르 그라시안  (0) 2022.12.22
    마음의 주인 / 이기주  (0) 2022.10.14
    행복한 이기주의자 / 웨인다이어  (0) 2022.10.14
    역행자 / 자청  (3) 2022.09.27
    어른의 문해력 / 김선영  (0) 2022.07.28
  • 티스토리툴바